밤바람 불던 낭만의 도시인데… 잠 못 드는 열대야에 시민들 2025명 숨진 '이 나라'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종이로 얼굴을 가린 시민들의 모습이다. / Oliverouge 3-shutterstock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종이로 얼굴을 가린 시민들의 모습이다. / Oliverouge 3-shutterstock

해가 지면 한풀 꺾이던 유럽의 여름 더위가 밤까지 남아 도시를 달구고 있다. 낮 동안 달아오른 건물과 도로가 밤새 열을 내뿜으면서 창문을 열어도 뜨거운 바람만 들어오고,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는 잠을 이루기조차 쉽지 않다. 선선한 저녁 바람을 기대하며 하루를 버티던 시민들은 이제 밤에도 더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더위가 며칠 만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높은 기온이 수주 동안 이어지면서 낮에 쌓인 열이 밤에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도시는 하루 종일 달아오른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제대로 쉬지 못한 시민들은 피로와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고령자와 어린이처럼 더위에 약한 사람들의 피해도 빠르게 늘고 있다.

관광객으로 붐비던 유럽의 거리와 광장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낮 일정을 줄이거나 실내로 들어가는 여행객이 늘었고, 저녁까지 더운 공기가 남아 야외 관광을 포기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유럽 15개국서 밤 최저기온 최고 기록

프랑스 마르세유 고우드 마을의 해안가 풍경이다. / VALLA STOCK-shutterstock
프랑스 마르세유 고우드 마을의 해안가 풍경이다. / VALLA STOCK-shutterstock

미국 기후 연구단체 버클리어스가 지난 6월 19일~30일까지 유럽의 기온을 조사한 결과, 북유럽을 포함한 최소 15개국의 수백 개 관측소에서 밤 최저기온이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년보다 높은 밤 기온이 나타난 국가는 25개국에 달해 일부 지역에 머물던 더위가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프랑스 기상청은 지난 5월~6월에 10일에서 2주가량 이어진 무더위가 대기와 지면, 주변 바다에 많은 열을 쌓아 놓았다고 설명했다. 낮 동안 달아오른 지면과 바다가 밤에도 열을 내보내면서 해가 진 뒤에도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은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자료에서도 남유럽과 동유럽의 가장 더운 밤 기온이 10년마다 0.5도 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낮 기온뿐 아니라 밤 최저기온까지 빠르게 오르면서 잠자는 동안 몸을 식힐 시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폭염 사망자 2025명, 파리권 화장 건수 62% 증가

프랑스 시내 거리의 한 약국 전광판이 영상 44도를 가리키고 있다. / StudioPhotoLoren-shutterstock
프랑스 시내 거리의 한 약국 전광판이 영상 44도를 가리키고 있다. / StudioPhotoLoren-shutterstock

프랑스에서는 잇따른 폭염으로 인명 피해도 커졌다. 프랑스 공공보건청이 전자 사망진단서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앞서 두 차례 발생한 이번 폭염 기간 사망자는 최소 2025명으로 나타났다. 아직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이 남아 있어 최종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짧은 기간 사망자가 크게 늘면서 화장 시설도 평소보다 바빠졌다. 프랑스 전역의 화장 건수는 평년 같은 기간보다 약 30% 늘었으며, 파리와 수도권에서는 증가율이 62%에 달했다. 화장 예약이 몰린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 일정이 늦어지면서 유족들이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아테네서 100일 넘긴 밤더위, 유럽 곳곳서 최저기온 상승

밤 기온이 크게 오른 지역은 남유럽과 동유럽이다. 독일 드레스덴 동쪽에 있는 쿱슈츠에서는 지난 6월 27일 최저기온이 29.4도까지 올라 해가 진 뒤에도 한낮과 비슷한 더위가 남았다.

지중해와 가까운 이탈리아 나폴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1970년대 이후 더운 밤이 해마다 약 하루씩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밀라노에서 밤더위가 나타난 날은 1년에 사흘 안팎이었지만, 이제는 연간 33일가량으로 늘었다.

아테네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24년에는 밤 기온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은 날이 100일을 넘겼다. 낮 동안 달아오른 건물과 도로가 밤늦게까지 열을 내뿜으면서 시민들은 창문을 열어도 더위를 피하기 어려웠다.

북서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관측소 절반 이상이 역대 가장 높은 밤 최저기온을 기록했으며, 일부 도시에서는 높은 밤 기온이 며칠씩 계속됐다.

폭염에 멈춘 고속열차, 에펠탑도 운영 시간 단축

사상 초유의 폭염으로 인해 운영 시간이 단축된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다. / Bonjour MD-shutterstock
사상 초유의 폭염으로 인해 운영 시간이 단축된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다. / Bonjour MD-shutterstock

유럽을 덮친 폭염은 대중교통과 관광지 운영에도 차질을 만들었다. 철로 온도가 크게 오르면 레일이 휘어질 수 있어 열차는 평소보다 속도를 낮추거나 운행을 멈춰야 한다. 런던과 파리를 잇는 고속열차 유로스타도 선로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운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돼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파리의 주요 관광지도 운영 시간을 줄였다. 에펠탑은 한낮 기온이 크게 오른 날 오후 4시부터 관람객 입장을 제한했으며, 현장에는 조기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됐다. 평소 여름 성수기에는 늦은 밤까지 관람객을 받지만, 폭염 속에서 야외에 오래 머무는 방문객과 직원의 안전을 고려해 문을 일찍 닫았다.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 등 실내 관광지도 운영 시간을 조정했다. 건물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어질 경우 관람객이 뜨거운 햇볕에 오래 노출될 수 있고, 냉방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직원과 관람객 모두 더위를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 앞뒀다면 숙소 냉방과 관광지 운영 시간부터 확인

한 시민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분수대 앞에 앉아 열기를 식히고 있다. / Oliverouge 3-shutterstock
한 시민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분수대 앞에 앉아 열기를 식히고 있다. / Oliverouge 3-shutterstock

여름철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항공권과 관광 코스보다 숙소의 냉방 여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유럽의 오래된 호텔과 아파트형 숙소 가운데는 에어컨이 없거나 객실 전체가 아닌 일부 공간에만 냉방기가 설치된 곳도 있다. 예약 화면에 에어컨 표시가 있더라도 개별 냉방인지, 선풍기만 제공하는지 숙소 후기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좋다.

관광 일정은 한낮보다 오전과 저녁에 배치하는 것이 수월하다. 기온이 크게 오르는 오후에는 박물관이나 쇼핑몰처럼 실내에서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넣고, 광장과 전망대, 도보 코스는 비교적 선선한 시간대로 옮기는 방식이다. 폭염이 심한 날에는 에펠탑이나 박물관, 열차 운행 시간이 갑자기 바뀔 수 있어 출발 전 공식 홈페이지와 예약 앱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외출할 때는 작은 물병을 들고 다니며 물을 자주 마시고, 그늘이 없는 관광지에서는 모자와 양산을 챙기는 편이 좋다. 몸에 붙는 짙은색 옷보다 바람이 잘 통하는 밝은색 옷이 걷기 편하며, 어지럽거나 속이 메스꺼우면 일정을 멈추고 냉방이 되는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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