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처럼 무서운 병인데 평생 딱 한 번 치료... 마침내 인류 첫 임상시험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당뇨병 환자가 매일 인슐린을 주사하는 대신 살면서 딱 한 번의 시술로 혈당을 스스로 조절하는 몸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처음으로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시작된다.

미국 바이오텍 기업 프랙틸 헬스(Fractyl Health)는 네덜란드 당국으로부터 'RJVA-001'의 제1/2상 최초 인체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고 최근 발표했다. RJVA-001은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벡터를 이용해 췌장 베타세포에 GLP-1 유전자를 직접 전달하는 유전자치료제다. AAV 기반 유전자치료제가 2형 당뇨병 임상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하리스 라자고팔란 의학박사는 "GLP-1 계열 의약품은 비만과 2형 당뇨병 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고용량의 전신 노출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기에 많은 환자가 이를 견디지 못하거나 중단한다"며 "RJVA-001은 다른 길을 택했다. 식사에 반응해 몸이 스스로 GLP-1을 생산하도록 하는 일회성 췌장 표적 유전자치료제다. 약리학이 아닌 생리학"이라고 말했다.

GLP-1이란 무엇인가

GLP-1은 음식을 먹을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며, 위장 운동을 늦춰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게 한다. 세마글루타이드(오젬픽·위고비)나 리라글루타이드(삭센다) 같은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은 이 호르몬의 작용을 모방한 것으로, 2형 당뇨병 치료와 비만 치료제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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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의 GLP-1 계열 약물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평생 투약을 지속해야 하고, 약을 끊으면 체중과 혈당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프랙틸이 2024년 미국당뇨병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전임상 데이터에서 세마글루타이드를 중단한 마우스는 체중이 기저치 수준으로 회복된 반면, 유전자치료를 받은 마우스는 약을 투여하지 않았음에도 체중과 혈당 개선 효과가 지속됐다. 또한 혈당이 낮을 때는 GLP-1 분비가 억제되고 혈당이 올라갈 때만 분비가 늘어나는 '영양소 반응성' 발현 패턴을 보여, 저혈당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됐다.

어떻게 작동하는가

RJVA-001의 핵심은 유전자 전달체인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다. AAV는 인체에 무해한 소형 바이러스다. 병원성이 없어 유전자치료 분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벡터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Zolgensma)나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Hemgenix) 등 이미 승인된 유전자치료제들도 AAV 기반이다.

RJVA-001은 AAV 벡터 안에 GLP-1을 만드는 유전자를 담아 췌장 베타세포에 직접 전달한다. 전달 경로가 독특하다. 정맥 주사나 근육 주사가 아니라 내시경 초음파(EUS) 유도 경유위 췌장 주입 방식을 쓴다. 내시경을 위 안으로 넣은 뒤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하면서 췌장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이다. 전신으로 약물이 퍼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췌장에만 집중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설계다.

유전자가 베타세포에 삽입되면 이후 식사할 때마다 혈중 포도당 농도가 오르는 것을 감지해 GLP-1이 자동으로 분비된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GLP-1 생산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RJVA-001은 당뇨 상태인 동물에서 건강한 동물보다 더 많은 GLP-1 발현을 보이는 '질병 상태 적응형' 발현 특성도 전임상에서 확인됐다. 혈당이 높을수록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의미다.

임상시험은 어떻게 진행?

이번 승인으로 시작되는 임상시험은 2형 당뇨병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개방형(공개) 다기관 연구다. 참여자들은 RJVA-001 투여 전 표준화된 약물 복용 및 GLP-1 세척 기간을 거친다. 이후 세 개의 용량 증량 코호트(각 최대 3명)에 배정돼 RJVA-001을 단 한 차례 투여받는다. 최적 용량 선정 후에는 최대 10명이 추가로 참여하는 확장 코호트가 진행된다.

안전성과 내약성이 1차 평가 지표다. 2차 지표로는 당화혈색소(HbA1c) 변화, 공복 혈당, 연속혈당측정(CGM)을 통한 정상 혈당 유지 시간(Time in Range) 등이 포함된다. 탐색적 지표로는 베타세포 기능, 대사 바이오마커, 심혈관 위험 지표, 이식 유전자 발현 등이 평가된다. 참여자들은 12개월간 집중 모니터링을 받고, 이후 최대 5년간의 장기 추적 연구에도 등록된다. 프랙틸은 올해 하반기 중 첫 환자에게 투약을 시작하고 초기 데이터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형 당뇨병에도 효과?

RJVA-001은 현재 2형 당뇨병만을 대상으로 한다. 1형 당뇨병과 2형 당뇨병은 발병 기전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1형 당뇨병은 자가면역 반응으로 췌장 베타세포 자체가 파괴되는 질환이다.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가 없어지기 때문에, GLP-1을 만들어봤자 인슐린 분비를 자극할 베타세포 자체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RJVA-001의 작용 기전이 1형 당뇨병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 자체가 1형 당뇨병에서 '보조요법'으로 일부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 데이터는 있다. 인슐린 투여와 병용 시 HbA1c가 약 0.3~0.4% 낮아지고, 체중이 약 5kg 감소하며, 인슐린 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직 GLP-1 계열 약물을 1형 당뇨병에 공식 승인하지 않았고, 미국당뇨병학회도 2023년 가이드라인에서 이를 '허가 외 적용 가능성'으로만 언급한다.

1형 당뇨병에 특화된 유전자치료 연구는 별도로 진행 중이다. 크리야 테라퓨틱스(Kriya Therapeutics)는 AAV1 기반 벡터를 이용해 근육에 직접 인슐린과 글루코키나아제 유전자를 전달하는 KRIYA-839를 개발 중이며, 1형 당뇨 동물 모델에서 저혈당 없이 혈당 조절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기존 약물과 다른 점은?

현재 처방되는 세마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 같은 GLP-1 계열 약물은 전신에 고농도로 약물이 퍼지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오심·구토·설사 같은 위장관 부작용이 빈번하고, 투약을 중단하면 효과가 사라진다. 또 약값이 비싸 경제적 부담도 크다.

RJVA-001은 이런 문제들을 원리적으로 다르게 접근한다. 전신 노출이 아닌 췌장 국소 발현이어서 전신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일회성 투여로 지속 효과를 목표로 한다. 프리임상에서는 단 한 번의 투여로 고지방식이를 먹인 마우스에서 체중 증가와 고혈당이 예방됐다.

다만 이 모든 결과는 아직 동물 실험 수준이다. 인체에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전하게 효과가 지속될지는 이번 임상시험이 처음으로 검증하게 된다. AAV 기반 유전자치료제 특성상 면역 반응 유발 가능성, 유전자 발현의 장기 안정성, 췌장 직접 주입에 따른 부작용 등이 임상에서 확인해야 할 주요 과제다.

프랙틸은 현재 GLP-1 약물 치료 후 체중 유지를 위한 또 다른 치료법 '리바이타(Revita)'도 피벗 임상 중이며, GIP·GLP-1 이중 작용 비만 유전자치료제 RJVA-002도 전임상 개발 단계에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당뇨병을 평생 관리하는 만성질환이 아닌 한 번의 치료로 끝낼 수 있는 질환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인간을 대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의 당뇨 환자 수는...

이런 유전자치료 연구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당뇨병 환자 수가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당뇨병 환자 수는 2014년 207만8650명에서 2024년 360만2443명으로 10년 새 73.3% 늘었다. 특히 2030 환자 수가 같은 기간 8만7273명에서 15만6942명으로 79.8% 증가해 전체 평균을 웃도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젊은 층 당뇨 증가의 배경에는 비만율 상승이 자리한다. '2023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9~29세 비만율은 2014년 23.9%에서 2023년 33.6%로, 30~39세는 31.8%에서 39.8%로 각각 상승했다. 문제는 젊은 환자일수록 자각 없이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당뇨병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갈증, 피로감, 잦은 소변 같은 가벼운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 뒤늦게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 그사이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손상되고, 망막병증·신장병증·신경병증 같은 미세혈관 합병증은 물론 심근경색·뇌졸중 위험까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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