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기 철도 파업 이끈 노동부 장관, 삼성전자 '긴급조정권' 발동 망설이는 이유 [더게이트 포커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AI 생성 이미지)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AI 생성 이미지)

[더게이트]

삼성전자 노사 교섭이 결렬되고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가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개 시사했으나, 정작 발동 권한을 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자율 교섭이 대원칙"이라며 사실상 제동을 건 상태다. 정부 내에서 이견이 표출된 것이다.

이를 두고 김영훈 장관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장관은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과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위원장을 지냈는데, 단순히 이 점 때문만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그가 긴급조정권이라는 강제 조치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노동운동가 시절 뼈아픈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15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2월부터 초과이익 성과급(OPI) 제도 개편을 둘러싼 집중 교섭을 벌여 왔다. 노조 측은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반 산정 방식을 폐지하고 영업이익 기준으로 전환할 것, 연봉의 50%로 제한된 OPI 상한을 없앨 것을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EVA 체계 유지와 반도체(DS) 부문 초과성과 주식 보상 방안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절차에 따라 최근까지 막판 밤샘 교섭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 흔드는 '삼전 파업'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지난 23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캠퍼스 앞에서 진행한 투쟁결의대회 참석 모습 (사진=삼성전자 초기업노조)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지난 23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캠퍼스 앞에서 진행한 투쟁결의대회 참석 모습 (사진=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초기업노조의 이번 파업 선언은 반도체 산업이 인공지능(AI)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시점에 나온 탓에 경제 전반에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 등 삼성전자 사장단은 이날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이례적인 공개 사과까지 내놨다.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공급 안정성 점검에 나섰다는 전언도 잇따르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연속 공정 특성이 강해 인력 공백이 단기간에도 수율 저하와 납기 차질로 이어진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최첨단 낸드플래시 수요가 급증하는 현 시점에서 DS부문의 생산 중단은 치명적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파업 결과가 기업의 보상 관행과 삼성 노사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사태가 국가 경제 차원의 리스크로 번지자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14일 "파업이 발생할 경우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공개 언급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이번 갈등과 관련해 긴급조정권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첫 사례다. 긴급조정권은 파업 즉시 중단과 최대 30일 간 쟁의행위 금지를 강제할 수 있는 행정 조치다.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국가 경제와 공공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예상될 경우 발동 가능하다.

그런데 긴급조정권 발동권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이 점 때문에 국가적인 우려에도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이 크지 않다. 김영훈 장관은 지난 13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자율 교섭이 대원칙"이라고 밝혔다. 정부 내에서 산업부는 강경 대응 쪽으로, 노동부는 자율 교섭 쪽으로 온도차가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긴급조정권'과 얽힌 노동운동가의 기억

(사진=AI 생성 이미지)(사진=AI 생성 이미지)

김영훈 장관이 긴급조정권 발동에 소극적인 데에는 그의 이력이 단단히 얽혀 있다. 그는 2004년 철도노조 위원장, 2007년 초대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위원장, 2010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다. 노동계에서는 긴급조정권이 노조의 단체행동권 행사를 제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온 제도다.

실제로 긴급조정권이 노동운동 판도를 바꿔 놓은 사례가 있다. 그가 첫 번째 철도노조 위원장을 맡았던 2005년 말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조종사노조의 파업으로 항공 운항이 심각한 차질을 빚자 정부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김 장관은 같은 민주노총 지붕 아래에서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파업이 강제로 중단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파업은 노동관계법 개편의 계기가 됐다. 이듬해 정부는 항공운수업을 필수공익 사업장으로 지정하고 기존 직권 중재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 유지 업무 제도를 도입했다. 철도·항공·수도·전기 등 사회간접자본 관련 사업장에서는 파업 참여 인원을 제한해 기본 업무가 유지되도록 한 조치였다. 당시 민주노총 소속이던 철도노조는 이후 파업 때마다 이 제도의 제약을 정면으로 받아야 했다.

김 장관 본인도 긴급조정권과 맞닥뜨린 경험이 있다.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2014년 철도노조 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해 2016년 9월부터 12월 초까지 70일 넘는 파업을 이끌었다. 이는 역대 최장기 철도 파업으로 기록됐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고 열차 운행이 멈출 때마다 정부는 긴급조정권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필수 유지 업무 제도로 인해 조합원들이 출근과 파업을 반복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노조 입장에서는 파업 동력을 약화시키는 장애물이었다.

노동계에서 긴급조정권은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 자체가 이례적일 뿐 아니라 그 장관이 긴급조정권 발동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구도가 이번 사태의 묘한 긴장을 만드는 상황이다. 이것이 김 장관이 발동을 주저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꼽힌다.

노노 갈등도 변수…파업 동력 약화 가능성도

한편 노조 내부의 균열도 이번 파업의 해법을 도출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초기업노조가 DS부문 중심의 성과급 논의를 주도하면서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조합원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DX 조합원들은 "DS 성과급 문제만 집중하고 DX 요구는 배제됐다"며 교섭 중단 가처분과 파업 절차 효력 다툼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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